그건 늦은 여름날이었다.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추진해온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그동안 주 7일 출근을 하고 아예 지난 한 달은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그랬던 그 프로젝트가 마침내 끝이 났다. 오랜만에 저녁 6시가 되자마자 퇴근을 했다. 간단히 프로젝트가 끝난 것을 자축하며 팀원들끼리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간단히 회식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오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어제는 누가 술을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고 오랜만에 기분 좋게 마신 술이었다. 어제만 해도 이 시간에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집에 들어와 쉬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매우 피곤해서 잠이 금방 들었다. 푹 자기 위해서 핸드폰 알람도 꺼버리고 잠을 잤다. 깨어나서 핸드폰을 보니 아직 12시도 되지 않았다. 잠깐 자다 깬 줄 알았는데 창문 사이로 비친 햇살이 어느새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시간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어느새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이동한 것이다. 점심이 되었지만 어제 회식 때 먹은 치킨 탓인지 별로 배고프지가 않았다. 다시 핸드폰을 확인 했다. 부재중 전화도 없었고 문자도 하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에 로그인 하니 친한 모든 사람이 ‘오프라인’모드였다.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비아그라를 판다는 광고와 음란사이트 광고, 대출광고 만이 있었다. 오늘은 회사에서 긴급 호출 연락이 올 확률도 거의 없었다. ‘익스플로러’를 켜고 탐험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세상의 이야기는 한가한 나와는 달리 매우 바빠 보였다. 한 여자배우는 불거진 스캔들을 부정했다. 한 남자 스타의 인터뷰에는 군대 관련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냥 한가하게 아무 생각 없이 뉴스를 보았다. 슬슬 배가 고파졌다. 밥통에 밥이 남아있던가? 다행히 밥통에 밥이 남아있었다. 찬장에서 ‘3분 짜장’을 꺼내 밥에 붓고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문득 플라스틱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면 몸에 좋지 않다. 란 기사를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어차피 위생규정을 지키지 않은 음식, 각종 방부제, 매일 피는 담배, 회식 때마다 폭탄주에 몸이 단련되어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았다. 고향 집에서 보내준 배추김치와 금방 데운 자장밥을 가지고 컴퓨터로 향했다. 컴퓨터 위에 자장밥을 올려놓고 밥을 먹었다. 오래전에 받아둔 영화를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날의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저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 그 날 열심히 했던 인터넷의 기사에서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연예인이 누구였는지, 눈물의 심경고백을 한 남자연예인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그저 그런 이야기 이었던 것이다. 컴퓨터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마트에서 산 싸구려 1회용 커피였다. 이제 슬슬 인터넷기사를 보기도 지겨워졌다. 휴대폰은 계속해서 조용했다. 휴대폰을 들고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딱히 만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 한 번 밥 먹자.”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현대인 따위는 없을 것이다. 여자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일까? 돌이켜 보면 항상 인연은 엇갈려 다가왔다. 맘에 드는 여자가 나타나면 항상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었다. 만약 돈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맘에 드는 여자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따라 메신저에서도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랜만에 할 일이 없었다. 어느새 시간은 오후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침대에 누웠다. 늦게까지 자서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냥 할 일없이 침대에서 뒹굴뒹굴되었다.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문득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뒤 읽지 못한 소설책들이 생각났다. 한 때 문학을 동경했고 사랑한 사람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오거나 문득 책이 특가로 나오면 책을 주문했다. 하지만 매일 바쁜 하루, 그리고 복잡한 지하철, 또 다른 놀이거리(스마트폰, 게임기, DMB)로 인해 점점 책은 쌓여갔다. 컴퓨터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mp3을 틀고 바빠서 오랫동안 책장에 처박혀 있던 책을 꺼내들었다. 책의 겉날개가 이미 읽은 페이지를 덥고 있었다. 오래 만에 보니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앞을 대충 훑어보고 책을 읽었다. 뭔가 심심해서 감자칩을 꺼내와 침대에서 먹으며 책을 보았다. 컴퓨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고 참으로 오랜만에 독서를 하고 다른 손으론 감자칩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너무 한가하고 행복한 오후였다. 저녁시간이 다 되었지만 몇 잔이나 먹은 커피와 감자칩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았다. 문득 오늘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새 옷이 자꾸 작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새 몇 달 동안 제대로 운동도 못하고 책상에 앉아서 일만하고 밥만 먹고 회식에 시달려서 인 것 같다. 계단을 오르면서 신호등을 잡으려고 뛰면서 체력이 모자란다고 생각을 했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다. 건강에 관한 정보를 나누다 보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추천했다. ‘빠르게 걷기’ 인터넷을 켜서 ‘걷기 운동’에 대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주머니에 지갑과 담배, mp3을 챙겼다. 지나가다 들른 편의점에서 이온음료 한 병을 사 손에 들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밝던 시간이었는데…. 어느새 날씨도 많이 시원해졌다. 운동을 하기 딱 알맞은 시간과 날씨였다. 귀 속의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취방을 나와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다음 선거 탓인지 최근 이 도시에 많은 공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얼마 전 완공된 이 공원은 주변 주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공원에는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노인 특유의 운동을 하는 늙은 노부부와 테니스 치는 아들과 아버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꼬마들. 섹시한 옷을 입고 뛰는 젊은 여자들. 공원에서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공원에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었다. 운동기구에는 사람 한두 명이 붙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공원 주변을 천천히 뛰나보니 산책로가 있었다. 가까운 동산을 올라가는 왕복 40분정도가 걸린다는 등산로였다. 그다지 가파른 길도 없었다.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비록 TV에서 나오는 절경은 아니었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푸른 숲이 이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밟아 보는 흙과 촉촉한 땅바닥이었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도시 근교에서 이렇게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소소한 행복이었다. mp3을 끄고 소리에 집중했다. 여름의 마지막을 알리는 매미 소리와 바람소리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정겨운 앞에 걸어가는 사람들의 소리, 그 소리는 풀벌레 소리 그 어떤 가요보다 그 어떤 고향 곡보다 아름다웠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김 부장의 잔소리도 잊어버리고 월요일 출근해서 해야 할 일 , 장가가라고 재촉하는 부모님들, 곧 날라 올 카드고지서도 그 모두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무한경쟁사회라고 하지만 이러한 여유가 하루도 없어서야 그게 사람 사는 사회일까? 그렇게 내일까지 이 한가로움에 빠져 지내보자. 그런데 여자 친구 하나 있으면 좋겠다. 이번 프로젝트도 끝나서 시간도 많고 사장님이 약속하신 보너스만 나온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김동률 5집 - Mon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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